2006. 5. 8. 11:47ㆍ읽을꺼리/가슴속이야기
맨발에 7부바지, 양손에는 가득차서 삐어져 나오는
쓰레기 봉투와 재 활용 쓰레기 봉투.
토요일 아침의 내 모습이다.
허름하여도 좋지.
동네 아주머니들도 이런 내 모습에 익숙해져 있고
내 스스로도 채 5분도 안되는 거리의 외출에 일부러
양말 찾아 신고 편하게 입고 있던 바지 추스려 갈아
입고 머리 빗고 나설 생각도 없으니...
꼼꼼하게 가득채우고도 모자라 두터운 손으로
꼭꼭 눌러담아 탱탱한 쓰레기 봉투를 아들녀석과
장난기를 발동시켜 휘휘 돌리다가 던져 넣기.
(이거 잘못 던져 터기지라도 하면 꽤 마음 아픈
후회를 해야 하는 일이다^^)를 성공적으로 마친후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놓은 커다란 비닐 봉투를
열어 제낀다.
우유상자, 음료병, 콜라캔.....
열심히 나누어 담고 일어서려는데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다.
커다란 종이상자.
종이상자만 모아 놓은 곳으로 밀어 넣으려는데
잘 안 들어가진다. 누가 내 맘같지 않게 제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은게 아니라 대충 던져 놓은것 같다.
에잉~~~
그래도 나 아니면 또 누가 치우랴.
내가 하지, 내가 치우자고.
아이와 함께 상자를 들어 옮기는데
아들녀석이 무슨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빠! 새소리가 나요.
응?
갈색의 네모난 상자를 열어보니
세상에나...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병아리들이
삐약 거리고 있었다.
다섯마리나...
그냥 두면 굶어 죽거나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고양이들에게
해를 입기 딱 좋은 상태다.
고민...
고민...
아이의 눈빛,
집사람의 눈빛,
그것을 뛰어 넘어 부화기에서 태어나
사람의 손을 엄마로 알고 있는건지
손만보면 삐약 거리며 종종 걸음을 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 들의 눈빛.
집사람의 범상치 않은 눈빛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다섯마리의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 엄마의 눈길에서도 염려 했던 매서운
찬바람이 아니라 안스러운 느낌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얼마나 되었을까?
학교앞 아이들의 하교길에 눈길받아 조그만 상자에 담겨
어느 집인가로 들어갔다가 쫒겨나 이곳에 있은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개중에 세 녀석은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누기 조차 힘든지
머리를 땅에 대고 힘든 숨만 쉬고 있었고 나머지 두마리도
무에그리 서러운지 시원치 않은 삐약 소리로 자기를
보아 달라 떼쓰고 있었다.
깨끗한 바닥으로 갈아주고 맑은 물도 챙겨 주니
호로록 달려와 물 한모금 삼키고 고개 바추 들고
물 한모금 삼키고 고개 바추들고하는 모습이
어찌나 이쁜지...
내친김에 식사도 준비한다.
초등학교때 기억을 되살려 병아리는 좁쌀을 먹는단걸 알고
좁쌀을 찾지만 있을리가 없단걸 왜 모를까?
밥통을 열어 한움큼의 밥을 떠내어 물에 말아 놓고 보니
너무크다. 아이들의 작은 목으로 넘기기에는 밥알 한톨 조차도
너무 큰것 같다. 가위를 꺼내어 하나하나 반으로 잘라내니
그나마 맘에 든다.
꼬박꼬박 졸고 있는 녀석들에게 내밀어 주니
꽤나 배가 고팠나 보다. 호로록 달려들어
콕콕 쪼아대며 먹는 모습이 보기에 좋은것 같더니만
이상하다? 두녀석은 그런대로 기력을 차려 모이를
쪼아 대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영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딸내미의 간호가 시작된다.
바닥을 폭신한 수건으로 갈아주고 가끔씩 질러대는
분비물도 싹싹 닦아 주고 물도 갈아주어 보지만
자꾸 고개를 바닥에 대기만 하니 딸내미의 눈빛에
사르르 눈물이 보이기 시작.
얼결에 아이에게 병아리들이 아프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을거야. 두고 보다가 더 많이 아픈것 같지만
동물병원에 가도록 하자구...
아빠의 말에 아이는 잠시 화색이 도는것 같더니
이내 뜨끔한 질문을 한다. 동물병원은 늦게까지
열지 않잖아요? 그리고, 병아리는 치료해 주지
않는대요ㅠㅠ
이런, 아이는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내었나 보다.
마음에 상처나 받지 말아야 할텐데...
괜한 짓을 했나 싶은 생각이 살짝 지나가고...
정공법으로 가는게 옳은 방법같다.
많이 아파요.
병아리가 많이 아파서 죽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밖에 그냥 두었다면 더 빨리 죽었을 거에요.
우리집에 와서 이렇게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그냥
아픈채로 죽었을 거에요.
부화기에서 태어난 병아리들은 몸이 많이 약해서
죽는 경우가 많아요. 다 살 수만 있다면 더 좋겠지만
모두 다 살릴 수는 없어요.
대신 이 녀석들은 우리집에서 이렇게 보살핌이라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이는 받아 들이는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시름시름 거리는 병아리들의 곁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아침.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난 아이가 내게로 와서는
이제는 더이상 숨쉬지 않는다며 차분히 이야기 해 준다.
꽃삽과 작은 나무상자.
더 이상 소리내지 않는 시름거리던 병아리들은
자기 몸집에 비해 커다란 나무 등걸의 햇빛 비추는 곳에
잘 묻어 주고 나머지 녀석들에게 더 많은 눈길을 주니
이틀째 되던 날 나머지 두 녀석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삐약 거리는 소리가 우렁차고 종이 상자가 좁다고
푸드덕 거리며 날아 올라 탈출에 성공한뒤 자신의
흔적을 마루에 뿌리기도 하고...
튼튼한 모습으로 보내게 되어 다행이다.
아파트 거실에서의 꼬꼬댁 거리는 닭이란
어울리지가 않는단걸 아이도 안다.
뒷 발질할 흙이 있는곳으로 보내기로 합의하고
보내기전 사진한장 남겨 놓는다.
녀석은 대부도 너른 땅에서 튼튼하게 어린 시절을
보낼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