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 11. 17:03ㆍ읽을꺼리/가슴속이야기
반짝임이 없다.
그렇다고 고풍스러움도 없다.
그저 조금은 오래 되었을것 같은
느낌의 빨간색 자전거 한대.
주인의 손때가 충분히 묻어 반들해진 손잡이,
햇살에 바래 회색빛 도는 안장, 햇살 내리는
수많은 소로와 이른 아침의 햇살을
가득히 받으며 달렸을 매끄러워진 페달,
때론, 조그만 꼬마 아이가
때론, 해 어둑해질 무렵에
정겨운 김 모락 거리게 할 저녁상에 오를
찬거리가 실려 있었을 짐 받침대,
아하~ 그리 바쁠일도 없었구나.
비켜달라 소리낼 그 흔한 때르릉
소리내는 종도 매달려 있던 곳에
거웃한 흔적만 보인다.
매일의 퇴근길과 주말에 한갓진
걸음이라도 나설라 치면 언제나
같은자리에 같은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빨간색 자전거.
이제는 투명함이 느껴지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의 세련된
멋진 모습보다는 햇살에 다듬어지고
적당히 바람맞고 비에 씻겨 검붉은 색으로
본래의 색을 잃어가고 있는 자전거 한대.
항상 연두빛 잎새 사이로 햇살 내리는
바로 그 나무 그늘 아래 참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던 빨간색 자전거는 잠깐의
상상을 불러오더니 그리 오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다녔을 사람에게로까지 이어진다.
밝은 파란색의 청바지에
노란색의 반팔티를 편하게 입고
어깨까지 내리는 생머리를 한
살아온 세월이 40년은 되었음직한
편안한 얼굴에 입 벌려 소리내는 웃음말고
입가에, 눈가에 살짝 살짝 비치는 맑은 웃음.
상상은 한 단계를 더 뛰어
빨간 자전거를 타고 온 몸으로 봄 바람을 맞으며
마실을 다니는 풍경화 같은 그림도 그려본다...
지난 두어주간,
난 그 궁금증을 출근길에서, 퇴근길에서
나무밑에 기대어 선 빨간 자전거를 볼때마다
품어 보곤 했다.
그 궁금증이 지난 일요일 드디어 풀렸다.
아이들과의 축구 시합을 위해
신발끈 질끈 매고 먼저 나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난 빨간 자전거를 먼저 보았다.
여전히 고운 자태로 메어져 있는...
어?
지난 시간 동안 내게 상상력까지 동원하며
나름대로의 추리로 풀어내어 가며 그려 왔던
바로 그 자전거로 한 사람이 다가서고 있었다.
일단 하나는 맞추었다.
노란색의 옷.
머리는 짧은 쇼커트.
청바지는 아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위아래가 모두 노란색인 옷을 입고
자전거의 열쇠를 풀어 낸다. 궁금증의 주인공.
좀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긴 머리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 가로수 길을
지나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짐올려 놓는 부분에 저녁 찬거리는
확인해 보고 싶어 졌기에...
이런!
이런!
옆집 사는 아저씨였다.
나보다 10살이 많으신 학교 선생님이시라는 분.
선생님!
이 자전거 선생님 자전거 였나요?
아! 상호 아빠.
맞습니다. 제 자전거.
자전거 보관대가 꽉 차서 이곳에 메어 놓고 있지요^^
한 바퀴 돌아 보려구요^^
인상좋은 선생님은 그게 왜 궁금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지니고 오히려 내게 물어 보신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자전거 색이 하도 이뻐서ㅠㅠ
^^ 그거요?
이거 꽤 오래된 자전거 랍니다.
제자들이 졸업 선물로 모아서 사준건대
아이들이 여자 아이라 색도 이렇게 빨간색으로 사 주었네요.
이상한가요? ^^
아니요, 아니요^^
자전거 타기 운동에도 좋지요?
그럼 다녀 오세요^^
예~
왜 내 머리에서의 상상은
빨간 자전거의 주인이 맑고 고운
웃음을 지닌 포근한 느낌의 여자 였을까?
왜 빨간 자전거를 탄 노란 운동복의 50세쯤 되신
남자 선생님은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왜 난 단색의 몇가지 되지 않는 원색에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아놓고
바꾸지 못하는지를...
빨간 자전거.
이거는 남자도, 여자도 탈수 있는거다.
때로는 하얀 은발의 머리가 어울리는 아저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