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 나무가 되고 싶었다.

2005. 4. 12. 20:52읽을꺼리/가슴속이야기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지은이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금 비오는 간이역을 바라보고 있다.

    빗살이 보이는 거센 비가  보슬보슬

    빛나는 이슬같은 비로 변하며 나는 신발을

    고쳐 신고 잠시 길을 나섰다.

         사람이 걷는 길이 준비되지 않는 간이역으로 가는 길...

 

         뽀옥 소리내는 기차만이 걸을 수 있다는 묵직한 느낌의

         레일위를 걷기도 하고 자각자각 소리나는 철길의 자갈위를

         걷기도 하고 가끔 기름냄새 물씬한 철로 침목을 겅중겅중

         밟아도 가며 비에 젖어 반짝이는 간이역을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조용한 비 내리는 날

         사람없는 간이역에서 철도청 제복을 입은 역무원만이

         가끔 다녀가는 역사의 나무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도 없이

         열차를 기다리는 호사스럼을 즐겨 보고 싶었다.

 

         이곳까지 오기가 조금은 멀긴 하지만

         망설임 없이 바로 앞에 간이역이 보이는 곳을

         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호사스럼이 항상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별로 없는 간이역.

         더하여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거의 인적이 없는

         역사를 바라보며 틈만나면 기억나던 이 정하 시인의

         시를 잠시 떠 올려 보았다...

 

         기차가 서지않아도 여전히 기차를 기다리는 간이역에도

         아주 가끔은 스쳐가는 급행이 아닌 정차를 하는 완행열차가

         드물게 머물곤 한다.  그 드물게 만나게 되는 열차에

         몸을 의지하여 떠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냥 보내고 만다.

 

         내게는 아직 할 것들이 많으므로.....

 

         스스로 어느 날 날을 잡아 아무 생각도 의무도 없는

         그런 열차여행을 남겨 놓으며 비 오는 간이역은 뒤로 멀어진다.

 

         내 남은 시간동안에 한번쯤은 그렇게 남겨놓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은사시 나무의 한들거림으로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일어나 열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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