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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 기 능 ]
꺽꺽 속울음 참아 내야 하는 그 마음은
차라리 꺼이꺼이 소리내어 한 풀이하는
백성이 부러웠으리라.
우러러 보아야하는 존체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되
쇄항증이라는 천형도 함께 지니고 태어난 몸.
우러름의 대상이어서 몸에 칼을 댈수 없음이니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왕족이란 이름은 원망스럽기만 하였으리라... |
자신이 왕자였음을 알지도 못한채 그리 죽어간
자연인으로 돌아간 아이의 무덤
아이는 자신의 태생이 왕족이었음이 원망스럽지 않았으리라.
그저 점점 힘겨워지는 자신의 숨결이 힘겨웠을뿐...
그걸 바라보는 세자빈이 아닌 '에미'의 마음은 얼마나 더 모질게 힘겨웠을까?
젓몸살을 풀기도전에, 그 보드라운 느낌을 품에서느끼기도 전에, 오물거리는 아이의 입기운을 가슴에 채 익히기도 전에 보내야 했던 어린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피눈물이 고였을까?
일설에 의하면 강빈의 첫째 아들이 항문이 막힌 채 태어나 출생한지 5일만에 죽었다고 하며, 영회원 가까운 곳에 묘를 썼기때문에 이 일대가 '애기릉(兒王陵)'이라고 불리웠다고 하며, 이곳에 있던 애기능을 약 십 수년전에 다른 곳으로 이장해가고 그 자리에는 금천 강씨 문중묘역(능선 하나 건너편에)이 조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인데, 아마도 강빈이 금천 강씨여서 그리된 것 같습니다만 확실한 근거 자료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재청 애기능 자료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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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은 사약을 받으시오
"무슨 어명이오?"
"죄인을 사사하라는 명이오."
"사사라고 하셨습니까?"
청천벽력 바로 그것이었다. '전복구이 독극물사건'은 아무리 조작해도 하늘이 알아 줄 것이라 믿었다. 사산한 아기 시신을 궁 밖으로 내보낸 것이 죄라면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었다. 허나, 그것이 죽임을 당해야 할 만큼 큰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궁에서 나가라 해서 나왔는데 사사(賜死)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전복구이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후원 별당에 유폐될 때, 폐출하여 서인으로 강등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 했다. 하지만 죽임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궁녀들이 모진 고문에 죽어나갔지만 죽일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몽롱한 현기증이 엄습해왔다. 쓰러질 것만 같다.
"그래도 이 나라의 세자빈이다. 체통을 잃지 말아야 한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정신을 다 잡았다.
---중략 ---
-간신이 인의장막을 치고 있다면 군주는 눈 뜬 장님이다-
병자호란 전, 진사시에 합격하여 조정에 출사한 오이규는 세자익위사 세마(洗馬)로 소현세자와 세자빈을 가까이서 모셨던 인물이다. | |
또한 세자빈의 남동생 강문명과 세마직을 인수인계한 선후배 사이었다. 세마는 동궁전의 말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정9품 벼슬이다.
"내의원 도제조에 누가 있소?"
임금 지근거리에 누가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병치레가 잦고 침 맞는 것을 좋아하는 인조 곁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사사가 누구의 계략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좌상이 겸하고 있소."
"김자점대감 말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전하께서 지금도 이형익에게 침을 맞고 있겠구려."
"침을 맞는 것 까지는 모르나 이형익이 드나드는 것은 몇 번 보았소."
"그렇다면 사사의 명이 나올 만 하오."
소의 조씨가 궁으로 불러들인 시골의원 이형익과 후궁전의 뒷배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자점이 인의장막을 치고 있다면 사사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 세자빈은 마음을 비웠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자빈이 동쪽을 향하여 4배를 올렸다. 임금이 있는 창경궁 쪽이다. 며느리가 아닌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마지막 예다. 국궁4배를 마친 세자빈이 다시 북쪽을 향하여 3번 절을 올렸다. 소현세자가 잠들어 있는 소경원을 향한 절이라는 것을 알 길이 없는 금부도사 오이규가 생뚱맞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
[ 소경원 ]

▲ 소경원 경기도 고양시 원당에 잠들어 있는 소현세자
자료출처 : 오마이뉴스
자리에 정좌한 세자빈이 약사발을 받아들었다. 감색 사약 수면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반영이었다. 구름 사이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보였다.
소현세자였다. 세자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그 눈망울이 슬퍼보였다.
"저하!"
불러보았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빈궁! 예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입술이 파랗게 떨렸을 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세자빈이 단숨에 사약을 들이켰다.
독기(毒氣)가 온 몸에 퍼져 나갔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무릎이 풀렸다.
비소에 부자와 게의 알을 으깨어 꿀에 뭉치고 제련하지 않은
황금가루와 독극물을 넣어 만든 환을 소주에 풀어놓은
사약(賜藥)을 마셔서 그럴까.
주기(酒氣)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400살이 넘었다는 이 나무는 알고 있을까? 세자빈이 죽음을 눈 앞에두고 눈빛으로 말했을 그 짧은 순간의 영원같은 이야기들과 마음들을...
엄습해 오는 통증과 구름 위를 나는 것만 같은 환각이 교차했다. 이때였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석견이었다. 귀국하던 해, 심양에서 낳아 강보에 싸가지고 돌아온 세 살배기 막내아들이었다.
"석견아!"
손을 뻗어 잡아보려 했으나 잡히지 않았다. 세자빈의 팔이 허공을 맴돌았다. 찬바람이 스산하다.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석견의 얼굴이 사라졌다. 피를 토하던 세자빈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금부도사! 사약이 남아 있으면 더 주시오."
금부도사 오이규로부터 약사발을 받아든 세자빈이 목마른 사슴이 물을 들이키듯 벌컥 벌컥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쨍그랑'
약사발 깨지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낭자한 세자빈이 앞으로 쓰러졌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흐트러지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그래도 머리는 지아비가 잠들어 있는 북쪽을 향하여 숨을 거두었다.
[역사소설 민회빈강41] 사약을 마시고 절명한 세자빈에서 인용 원문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01497
그러나 세자빈은 죽어서도 그리운 낭군의 곁에 가지를 못하였으니 그가 묻힌곳이 예전의 경기도 시흥시 구름산 기슭 강신 선산 지금의 광명시 노온사동이다.
분홍빛 꿈으로 가득채워 졌어야 할 소녀시절 그 시기를 피울음 울어야 할 회한으로 보낸 세자빈
죽어서도 살아 유일하게 사랑했었을 이의 곁에 묻히지 못한 세자빈.
그의 죽음을 두고 조금의 위안을 삼으시라 한다면 세자빈의 죽음은 억울한 것이었고 이제 그를 밝히니 이곳을 영회원이라 한다는 사람들의 되돌아 봄이 있음이다.
그 영회원을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여 남기고 있으니
조선 제16대 인조의 큰아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비 민회빈강씨(愍懷嬪姜氏)의 묘소.
지정번호 사적 제357호
지정연도 1991년 10월 25일
소장 문화재청
소재지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
시대 조선시대
면적 지정면적 2,182㎡
민회빈은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로 강감찬의 19대 손녀이다. 1627년(인조 5) 세자빈이 되었으며 소현세자가 병자호란으로 끌려갔다가 귀국한 뒤 죽자, 반목하고 있던 조소용(趙昭容)은 강빈이 세자를 죽였다고 무고(誣告)하여 궁중 후원에 유치(幽置)되었다가 1646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
죽음과 함께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서민의 신분으로 묻혔다가 1718년(숙종 44) 무고(無辜)함이 판명되어 복위되고, 복원묘(復元墓)를 만들어 민회묘라 부르다가 1903년(고종 7) 영회원으로 개칭되었다.
묘의 시설은 봉분,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석양(石羊), 석호(石虎), 문인석(文人石), 석마(石馬) 등이 있으나 비석과 정자각(丁字閣)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이곳 영회원을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사적 제3호 ‘화성(華城)’과 광명시에 있는 사적 제357호 ‘영회원(永懷園)’ 문화재구역 추가지정을 오는 5월 14일 자로 고시했다 [2010.5.14 문화재청]

저기 보이는 석등과 조각들은 모두가 하나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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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빈께서 잠들어 계신곳을 되돌아 나서는 길에는 화려하지 않은 꽃 한송이 고개를 내밀어 가는 길을 배웅해 주는대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지만 서러움이 왈칵 일어난다.
지상최고, 만고 지존의 자리에 올라 힘겹고 아파하는 백성들을 토닥이고 환한 웃음 활짝 웃는 자리에서 함께 웃어주며 삶을 살았어야 할 여인
그 여인의 맑은 소리는 사람들의 질시와 욕심으로 길 섶의 잡초처럼 짓밟혀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러움이 남아 눈에 띄지 않는 얕은 산자락 밑 어느 한 구석에서 한갓진 햇살을 쪼이고 있다.
후손들의 무심함으로 사라져 버린 비석과 정자각이 다시 지어지고 마음을 달래는 산책길 나설수 있도록 이제라도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의 위로가 되려나...
제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잃은 아픔이며 죽어서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정인에 대한 그리움이 달래 지려나...

문화재청에서는 2009년 영회원을 제대로 꾸미기 위한 예산으로 약 113억원을 책정하고 향후 5년여에 걸쳐 영회원의 모습을 갖추기로 계획 현재 주변 부지 매입부터 진행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난 뒤의 영회원은 소실되었던 비석과 정자각이 되살려지고 주변의 경관도 빼어나게 바뀌게 될것이다.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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