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2. 11:22ㆍ읽을꺼리/가슴속이야기
스르렁...
김이 화악 올라 오는 무쇠솥의 뚜껑을 열면,
올망졸망한 크기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손을 후~후~ 불어가며 하나씩 덜어 네모난 양철 도시락만한 크기의
나무상자에 대패로 곱게 밀어낸 듯한 나무 좋이를 깔고 하나, 둘...
열까지(이날 아저씨의 기분이 좋으면 12개도 담아진다^^) 세어 담고
노랗게 물든 단무지 서너개를 담으면 씨익 웃은 아저씨의 얼굴을 볼수가 있다.
무어냐고?
만두^^
어릴적 집앞 골목길 어귀에 있던 만두집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물론, 만두집이라 해서 만두만 파는건 아니다.
70년대의 대표적인 먹거리였던 만두집에는 항상 폭신폭신한 느낌의
주인아저씨의 마음처럼 넉넉해 보이는 찐빵도 함께 팔았다.
찐빵은 좋은대 속에 들은 팥을 많이 싫어하는탓에 별로 내 눈길을
끌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새 만큼은 지금 생각해 내어도 참 기분좋은
느낌을 되새길수가 있다.
물론, 내가 직접 기분좋은 훈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커다란 가마솥을
구경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때만해도 아이들 손에 용돈이
쥐어진다는 것은 흔한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드물게 부모님을 졸라
분위기를 만들어 만두사러가는 심부름을 하는 행운이 있기전에는
만두와 찐빵을 쪄내는 가마솥이 열리는 광경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두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내 기억은 그때쯤 만들어진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싹을 틔운 내 만두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은 환경보존이란 단어에 밀려 사라진 나무도시락과 만두를 담기전에
깔아 주었던 종이처럼 얇게 저민 나무종이와 가마솥 뚜껑이 열리며 올라오는
구수한 훈김도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아버님의 아이사랑을 시간이 갈수록
더 저며지게 느낄 수 있어서이다.
[대포]라 하였다.
전쟁이 나면 쓰면 무기가 아니라 동네 어귀마다 한 두 군데쯤은 꼭 있는
막걸리 집에서 파는 술이름이다. 왜 대포라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자주
들고 다녀 처음에는 맨드르르하고 반짝였을 몸뚱이가 색이 벗겨지고 요기조기
찌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에 한되씩 받아오는 심부름도 하곤 했던 그 [대포]를
참 좋아 하셨던 아버님이시다.
때론 흥에 겨우시면 젓가락으로 장단까지 맞추어 가시며 오~오~늘~도~오
걷는다~아~마~는~저~엉~처 어~업~느~은 이~이~바~알~기~일~
을 멋들어지게 불러 주시던 아버님이시다.
그런 아버님께서는 퇴근후 동네어귀나 직장 동료분들과 대포한잔을 하고 나시면 자리를
파한 시간과 관계없이 만두집이 문을 닫지 않는한 꼭 한 손에 나무상자에 담긴 만두를
사오신다.
일찍 오시는 아버님의 소리도 좋지만 때때로 늦어지시는 아버님을 기다리다 잠이 들어도
좋았던 이유가 바로 그 만두를 담은 봉지가 기다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날은 예외없이 내가 제일 먼저 잠을 깨게 되어 있다.
아버님은 막내인 나를 제일먼저 깨워 "우리 도토리 만두먹어라"라는 말씀을 하시고
나서야 곤한 몸을 쉬시곤 하셨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버지란 이름으로 불리고 나서야 아버님의 그 마음을 조금씩 공유해 가는 지금에사
생각해 보니 아버님께서 사오신 만두를 맛나게 먹는 막내 아들의 모습이 꽤나 기분 좋으셨을거라 생각된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일상에서의 아버님에 대한 생각을
가급적 피해가곤 했는대 메일함을 정리하다 아버님의 흔적을 만나게 되었다.
아버님과 내가 주고 받았던 메일에서는 여전히 만두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진행 되고 있었다...
아버님과 주고 받은 메일중에서...
아버지!!!!!!!!!
감사 합니다.
늘 이렇게 힘을 주시니 제가 열심히 아니하면 안되지요^^
이렇게 꼭 편지를 받고 나서야 답장을 쓰는 게으름은 있지만
아버지는 다 이해하여 주시니 정말 감사 합니다.
편지 주시기 전에 편지드리는 부지런함도 앞으로는
노력해 볼께요.
아버지는 제 걱정은 하나도 안하셔도 되셔요
왜냐하면, 제가 잘하고 있는게 눈에 보이잖아요.
저를 보시면 듬직하고 마음이 흡족하시죠?
이후로도 그렇게 살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께요
그리고 자주 이렇게 힘을 주세요
그럼 더 잘 할수 있거든요.
제가 맘으로는 이것저것 많은것들을 해드리고
보여 드리구 싶은데 종종 그렇게 안되긴 하지만
마음까지 게을러진건 아니랍니다.
그러니 가끔 맘에 안 드셔두 다 이해해 주세요^^
아버님께서 제가 어릴적 사다 주시던
나무 종이에 쌓여 있던 만두를 사오셔서는
잠에서 덜깬 제게 주시고 저는 또 졸린눈 비비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엔 나무종이에 싼 만두는 보기 힘들지만
만두는 여기 저기 보여서 길가다가
만두가 보이면 그때 생각을 하며
웃어보곤 한답니다.
아버지!
언제 만두 한번 사주세요.
아주 맛있게 먹을께요^^
그럼 또 편지 드릴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Original Message -----
From: 이명용
To: friendle@dreamwiz.com
Sent: Friday, July 13, 2001 3:44 PM
Subject: 근무
근무잘하는 모습이 보이는 군.
오늘도 가슴을 펴고 팔 다 리머리를 써서
계획 실천 결논을 얻으려고 힘차게 걷고 뛰고 날면서
목적 달성에 전력을 다하고있는 우리아들의 늠늠 한모습이
눈에 훤이 보이는 구려
힘차게 으늘도 하나 내일도 하나글피도 하나 로 씩씩하게
전진에 또전진 힘차게 전진하세 우리 나의 아들 만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아버지로 부터 !!!!!!!!2001, 7 , 13,
아버님께서 늦으신 연세에 메일 쓰는법을 배워
내게 보내신 편지중의 하나.
몇번의 시행착오가 힘드셔서 그만 두실만도 싶다 싶으셨는대도
그만두지 않으시더니 보내주신 메일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여 주시고 싶어서 였단다.
나이가 들었어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남겨지길
원하셔서 였단다.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가시고 나신 지금도
원하시던 작은 것들 중의 하나를
아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 놓고 계시다.
여전히 아이같은 맑은 웃음으로 미련한 아들을 바라보시며
등을 두드리고 계시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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