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이 둘의 대표적인 색을 떠올리면
밝음보다는 어둠이 먼저 이다.
비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두운 곳만 바라보아지는 습관.
최대의 부정을 통한 최고의 긍정을 이끌어 내기위한
방법을 택했다 생각하더라도 이 둘의 이미지는 어둠이다.
두사람에 심취해 그들의 가장 도드라지는 이미지를 어설프게 흉내 내 보곤 했다.
그래서 닉네임도 -쇼페니체-라 부르기도 하고...
그때에 중얼 거렸던 이야기들...
[기쁨]이란 최악의 상황만을 지녀야 했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 쇼페니체 -
[행복]이란 고개들어 바라 볼 곳이 없던 사람이
바라보게 된 하늘이다. - 쇼페니체 -
[전율]이란 무뎌져 있던 온갖 감각이 한번에 살아나는
벅찬 즐거움이다 - 쇼페니체 -
[소망]이란 가슴에 꼭꼭 숨겨 두었던 쇼페니체란 이름을
꺼내어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다
[존재]란 가슴속에 소망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 파란구름 -
파란구름은 소망을 잊어가고 있던 아이의 꿈이다.
현실에서 이루어 지는 꿈이다.
그러던 어느날 쇼페니체를 버리게 된다.
靑雲
존재감을 갖고 소망을 품고 싶어졌다.
그리고 소망을 품었다.
그런대 하냥 끝없이 길기만한 각다분한 삶이
다시 그 이름을 부르고 싶어지게 한다.
점점 더 힘겹고 매양 그 모양일 뿐인 일상의 치열함이
바라보는 시선을 어둠으로만 향하게 하던
쇼페니체의 이름을 고민하던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고민과 번민은 많다지만 힘겹지는 않았던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주변에 짙은 커튼을 휘장처럼 두르고 겉으로는 누구도
내 속내를 알수 없게 가장하고 항상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항상 울음 울고 있던 그때를...
절망을 우러르던 그때로 돌아가서는 아니된다는 이성의 방어기제가
요즈음 가끔씩 사라지곤 한다.
유일한 방어기제인 냉철한 이성.
이 이성을 사라지게 하는건 외부요인의 집요한 방해가 그 시발점이지만
내 안에서 자각되어지는건 그 외부요인의 원인이 내게서 시작되었다는
지독한 자괴감...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시작된 소망이란 단어의 의미를 지켜 내기가
점점 힘겨움으로 느껴진다.
소망의 의미가 부여한 내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 드센 기운을
이겨내려 무진 애를 쓰건만 시간이 갈수록 버거워진다.
그저,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즐기는 것 정도의 내 욕심조차
놓아두지 않으려는 집요한 속성의 그 기운을
이제 그만 떼어 놓고 싶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