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cloud62 2011. 9. 7. 18:23


 

21717

 

 

 

내 몸뚱아리 하나 겨울 가릴만한 크기의 나무그늘
그 그늘 밑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길섶엔
아무리 외우려해도 기억으로는 남지않는 많은 꽃들

 

이른 봄, 뿌리 내리려 무진 애를 썻지만
지금은 손만대도 툭 소리내며 가지를 떨구는
뿌리 내렸으면 참 고운 꽃을 피워 올려주었을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화목들

 

진한 색감으로 외우기 힘든 이름으로 화려한
모양새로 여기 저기 조화를 이뤄 심어지고 꽃을 피운 나무들

그들을 뒤로 뒤로 밀어내며 걸어 온 길의 끝자락엔
깨끗하고 선명한 꽃 몇송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깨작깨작 습관보다 못한 끼니를 채운뒤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도
여전히 더부룩한 느낌이 가시질 않아 나선 마실길에서 만난
나긋한 바람에도 유난히 하늘거리는 느낌 하나.

 

아직 형태가 분명치 않은 거리에서도 녀석의 이름이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꽃이름중에 코스모스라 불리는
녀석이란걸 알아채는건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다.

 

식물도감을 펼치면 언제 개화를 하고 어디가 원산지이고
형태는 어떠며 하는 기억을 떠 올릴 필요도 없다.

 

녀석은 내 어린시절 어디를 가나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때로는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귀여운  손짓이 되기도 하고


하나건너 잎새를 떼네고 하늘로 한껏 던져 올리면 뱅글뱅글
맴을 돌며 내려오는 재주를 보여주는 장난감이 되어 주기도 하고


톡톡 한줌되게 꺽어내어 투명한 유리병에 꽃아 맑은 물 부어주면
거실 한켠이 환하게 빛나던 꽃다발이 되어 주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지식이 아닌 기억으로, 추억으로 내게 남겨진 꽃이기 때문이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심어질 자격을 위해
고르고 골라져 자기 자리를 잡은 몸값 비싼 나무나 꽃들이 받는 관심이
없어도 홀로 하늘거리는 추억을 만들어 내는 너는 내가 아는 몇 안되는
꽃이름 중에 제일 앞에 있다.

 

화려하게 꾸며지고 손 보아진 그 많은 녀석들은
그저 "곱다, 이쁘다"라는 말로 기억에서 뭉뚱그려지고 말지만

 

꽃이 아닌 내 어린시절의 하나로 기억되는 너는


내 죽는날까지 고운 추억으로 한해 한해를 기억해내는
이야기를 남겨 줄 것만 같다...

 

그런 너를 만날 수 있어 좋은 날이다.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