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꺼리/가슴속이야기

나를 친구라 불러주는...

bluecloud62 2005. 4. 8. 09:50

늘 같은 시간에 늘 같은 모습으로 늘 같은 길을 따라

출근하고 늘 같은 업무를 시작하는 내 모습이 가끔은

지겨울 때가 있답니다.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를 그 지겨움이 시작되면
마음속에 아주 길고 어두운 빈 공간이 생겨나
어떤 몸짓도 어떤 의미도 그 지겨움을 털어내지
못하는 지독한 무력함을 겪어야 한답니다.

 

때론, 그 지독한 무력감으로 인해
내가 이제까지 지녀왔던 모든것들을
한번에 포기해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때론 그것이 이유가 되어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들을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지내 온 적도 있었구요.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무력감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도 있단 것을 알았답니다.

 

언어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마냥 깊은 나락으로 꺼져 가는 것 같기만 한
그런 마음이 들 때에 가장 큰 힘이 되는것은
시작이 사람의 마음에서 왔듯이 그것을 마무리
짓는것도 사람의 마음으로 가능하다는...


봄비에 얼굴을 씻고 피어나는 투명한 새싹이나
소리없이 까르르 웃음 피어나는 백일도 안된 아이의 몸짓이나

화르르 날리듯 떨어지는 벗꽃들의 춤사위나

햇살 따스한 양지에 엎드려 졸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나
노을 가득한 강변의 벤치에 앉아 있는연인들의 뒷모습이나
이런 것들을 보고 얼굴에 소리없는 웃음이 번지는 내 모습으로

 

또는,
퇴근길 지하철계단에 쪼그리고 앉은 할아버지의 새카만손톱이나
소래시장 골목에서 찬송가를 틀고 천원짜리 잡동사니를 파는

아저씨나 장농속에 갇혀 죽어간 아이의 소식을 전하는 저녁

뉴스나 감춘것 전혀 없이 마음을 주었는데 쉽게 등 돌려 버리는

지인이나 이런 것들을 보고 서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는 내 모습으로

 

그리고,
아직은 그러한 것들로 인해 내 마음에서 잔잔히 번져 나오는
즐거움이나 서러운 마음을 내게 알려 주는 세상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가끔씩 내게 벼락처럼 다가서는 힘겨움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된답니다.

 

살다보면
아주 작은 느낌과 생각 만으로도 세상의 그 무엇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던 지독한 절망감을 이겨 낼수도 있단 것과
뭔지는 모르지만 축축 늘어지게만 만드는 무력감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내 곁엔 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내게 주어진 것임에도 난 그것이 내 곁에 있는 내것인줄

모르다가 누군가가 톡톡 어깨 두드리며 "거기에 네 것이 있어"

라고 말해 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내것인 줄을 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무뎌지지 않으려 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알고 아주 작은 것에도 서러워

할 줄 알고 아주 작은 것에도 웃음 지을 줄 알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 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지니려 합니다.

 

그 시작에 나를 친구로 불러주는 정겨운 이들이 있습니다.